*카롤링거 미술*
프랑크 왕국의 왕인 '샤를마뉴(=카롤루스 대제)'는 서중부 유럽의 역사적 위인이자 특히 프랑스와 독일 양 국가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샤를마뉴의 제국은 오래가지 못했으며, 그의 사후 손자들의 의해 세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와 별개로 샤를마뉴 시대에 이룩한 문화적 업적은 이보다 오래갔는데 샤를마뉴의 문화 개혁 중에는 고대 로마의 문헌을 수집하고 복사하여 사본을 만드는 작업이 있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라틴고전 문학의 원전들이 카롤링거 수사본으로 기록되어있다.

알브레히트 뒤러_1512년_190 x 89cm_Germanisches National museum_독일
<건축>
● 샤를마뉴의 왕실 교회(=아헨 대성당)
이탈리아를 방문한 샤를마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의 건축물을 보고 감동을 받아 프랑크 왕국의 수도 아헨에서도 그 감동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이 건축물은 비잔틴의 성 비탈레 교회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기둥뿐만 아니라 청동 창틀까지 이탈리아에서 직접 수입하였다고 한다. 알프스 북쪽 지역 건축가 중에서 가장 최초로 이름이 알려진 '메츠의 오도(Odo of Metz)'가 설계하였다.
이후 오랜 세월을 거쳐 여러 공간으로 증축되었는데 '아헨 대성당'만의 독특한 매력은 건물의 각 부분에서 보이는 세월의 흐름에 있다. 먼저 웅장한 로마식 받침 기둥과 비잔틴 양식의 팔각형 모양의 중앙 본당이 있고 그 위에 얹은 바로크 양식의 돔과 눈에 띄는 고딕 양식의 뾰족한 첨탑이 있다. 이 건축물의 다양한 양식은 그 중요성과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1978년에 독일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792~805년_독일_아헨
● 샤를마뉴의 왕실 교회(=아헨 대성당)의 내부 1
비잔틴 양식의 천장 모자이크는 요한계시록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스물네 명의 장로들에게 둘러싸여 보좌에 오른 예수의 모습을 모자이크로 표현하였다.

792~805년_독일_아헨
● 샤를마뉴의 왕실 교회(=아헨 대성당)의 내부 2

792~805년_독일_아헨
● 생 갈 수도원의 설계도(평면도)
이 설계도의 기본 구성은 816~817년에 열린 아헨 공의회에서 결정되었는데, 이 수도원의 재건축을 위해 제작된 설계도이다. 넓은 면적 위에 수도원에서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춘 모습은 복잡해 보이면서 장대해 보인다. '생 갈 수도원의 설계도(평면도)'는 이런 설계 방식으로 세워진 수도원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중세 건축의 고유한 설계 개념을 확립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설계도 맨 하단에 정문이 있는데 그 오른쪽에 보이는 6개의 사각형 형태는 하인의 숙소와 가축들의 마구간이다.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기다란 모양의 바실리카 형태의 교회건물과 반원 모양의 현관이 보이고 그 현관 양쪽에는 원형탑이 세워져 있다. 두 개의 원형탑들은 새로 건축될 평면도 상의 건물들 중에서 이곳이 수도원의 중심임을 나타낸다. 바실리카 건물 안쪽 끝에는 제단과 성가대석도 보인다. 이 바실리카에는 출입구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는데 이런 설계는 일반인을 위한 교회당이 아닌 수도사들의 예배를 위해 세워진 교회당의 기능을 반영한 것이다.
바실리카 건물의 오른쪽에는 기숙사뿐만 아니라 빈민 구제소도 있다. 오른쪽 방향으로 갈수록 식당과 조리실 그리고 각종 공방과 헛간이 보인다. 바실리카를 중심에 두고, 설계도 상단의 오른쪽 편에는 순차적으로 묘지와 과수원, 채소밭과 정원사의 숙소가 배치되어 있고 두 개의 원은 닭과 거위를 기르는 곳이다. 설계도 상단 왼편으로는 진료소와 의사의 숙소가 있으며, 약초 재배실도 배치되어있다. 바실리카 건물 왼쪽에는 대수도원장의 숙소와 학교 그리고 그 아래에는 방문 수도사와 교장, 손님들의 숙소가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시설이 배치되어있다.

820년경_양피지에 라틴어_112.1 x 71.1cm_스위스_생갈
● 생 갈 수도원(=생 갈 대성당)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생 갈 수도원'은 결국 위의 설계도의 모습 그대로 세워지지는 않았으나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양식으로 증축되었다. 중세시대의 가장 명성이 높은 수도원 중에 하나였으며,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생 갈 수도원의 도서관은 가장 오래된 도서관 중 하나이며, 이곳에는 수도사들이 저술한 문학과 예배용 저서 등과 풍부한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수도원 본당과 수도원 도서관의 내부 장식은 로코코 양식이며 천장에는 섬세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1772년 완공_스위스_생갈
● 생 갈 수도원(=생 갈 대성당)의 내부

1772년 완공_스위스_생갈
● 생 갈 수도원(=생 갈 대성당)의 도서관

1758~1767년 완공_스위스_생갈
<수사본과 표지 장식>
● ≪샤를 마뉴의 복음서≫ 중에서 <성 마태>
아헨에 있는 샤를마뉴의 묘지에서 발견된 복음서에 <성 마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창문'처럼 취급하려는 의도적인 액자 형태는 이 그림이 로마의 회화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그림은 카롤링거 왕조가 추구했던 고전을 맹목적으로만 따랐던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단지 시각적인 모방에 그치는 그림 삽화 방식은 약 30년 후에 그려진 ≪랭스의 대주교 에보의 복음서≫에 삽입된 그림에서는 다르게 변화하였음을 볼 수 있다.

800~810년경_양피지_25.4 x 33cm_미술사 박물관_오스트리아_빈
● ≪랭스의 대주교 에보의 복음서≫ 중에서 <성 마가>
<성 마가> 그림은 약 500년 전에 만들어진 '유니우스 바수스의 석관'에 장식된 옥좌에 앉은 예수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데, 사각형의 얼굴형과 앉은 상태에서 내민 한쪽 발 그리고 어깨에 사선으로 걸친 천 등의 모습이 두 작품에서 겹쳐 보인다. 한 손에 깃펜을 들고 다른 손에는 책을 든 모습과 옥좌의 다리가 동물의 다리 형태인 점도 더욱 그러하다. 이 작품은 카롤링거풍으로 재해석된 고전적인 규범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활력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림 속에서 마가는 학자의 모습보다는 감정이 드러나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됐으며 그의 시선은 책이 아니라 말씀 즉 복음을 의미하는 두루마리에 닿아있다.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고전적인 이미지와 중세적인 이미지가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었는지 분명하게 볼 수 있다.

816~835년경_에페르네 시립 도서관_프랑스
● ≪린다우 복음서≫의 표지 장식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이 화려하면서 견고한 금세공 작품은 초기 중세 시대인 암흑시대의 '켈트-게르만족'의 세공술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잘 보여준다. ≪린다우 복음서≫의 표지 표면에 보석류들은 완전히 박혀있는 상태가 아니라 표면에 살짝 돌출된 모습이다. 이런 방식은 보석이 빛을 받았을 때 선명한 광채를 띄게 만들며 표지의 장식적인 요소를 부각하였다. 중앙에 묘사된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경건한 모습인 것을 볼 때, 그리스도의 모습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표현방식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870년경_26.7 x 34.9cm_피어폰트 모건 도서관_뉴욕

870년경_26.7 x 34.9cm_피어폰트 모건 도서관_뉴욕
*출처_서양미술사_H.W. 잰슨 & A.F. 잰슨, 나무위키, 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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