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미술*
843년의 베르됭 조약으로 샤를마뉴의 대제국은 다시 세 개의 국가로 나뉘게 되었다. 동프랑크는 독일의 서프랑크는 프랑스의 그리고 중프랑크는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왕권이 약해진 만큼 주변 민족들의 침략이 빈번하였는데, 북방민족인 노르만족은 프랑스의 노르망디까지 내려와 정착하였다. 이들은 기독교와 카롤링거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프랑스의 공작의 자리에 오르며 서유럽이 봉건 사회 구조로 형성하게 되는 촉진제의 역할을 하였다. 독일에서는 북쪽 지역의 작센 왕조(919~1024년)가 권력을 잡아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이루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였던 오토 1세는 샤를마뉴의 대제국의 뒤를 따라 교황의 지원 아래 황제가 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은 다시 부활하였다.
<조각>
● <게로의 십자가 책형>
강력한 군주였던 오토 대제는 정치뿐만 아니라 미술에 있어서도 카롤링거의 전통을 부활시키고자 하였으며 이는 독창적인 미술의 양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화려한 보석과 금속 세공을 뽐내는 ≪린다우 복음서≫의 표지가 만들어진지 고작 100년이 지났으나 <게로의 십자가 책형>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비잔틴 미술의 비애감 어린 그리스도 모자이크에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어 보이지만, 이 작품은 이제까지 서양 미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상'을 보여준다. 묘사된 인체는 정말로 공중에 매달린 것 같은 모습이며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은 생명력이 상실된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그리스도를 향한 깊은 동정심이 느껴지는 이러한 사실적인 표현주의는 훗날 독일 미술의 특징으로 발전하게 된다.

975~1000년경_나무_높이 188cm_쾰른 대성당_독일
<건축>
고대의 베네딕트 수도원의 교회당이었던 <성 미가엘 성당>은 1010년〜1022년 사이에 힐데스하임의 주교 베른바르트가 설계하고 건설하였다. 이 성당은 중세 예술의 핵심적인 기념물이며 훗날 <힐데스하임 성당>으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이 건축물의 형태는 두 개의 내진과 측면 입구가 설계되어 있어 '생 갈 수도원'의 평면 설계도가 연상된다. 이 성당은 보다 더 대칭적인 구조인데 아래의 <힐데스하임 성당>의 재건축 설계도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베른바르트 주교는 제단 뒤에 있는 반원형의 공간(애프스, apse)이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하여 대칭적인 구조의 바실리카 형태로 설계하였다. 중앙의 회중석에는 사각형 모양으로 된 기둥과 원기둥이 번갈아 가며 세워져 있고 교차형 종탑과 계단탑이 좌우에 두 개씩 배치되어 있는 등 건물의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하여 대칭적인 설계를 하였다. <힐데스하임 성당>의 '성 미가엘 성당'에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인 작은 납골당이 있는데, 건물의 서쪽 내진을 다른 부분에 비해 높게 설계하여 그아래 반지하 공간에 설치하였다.
<힐데스하임 성당>은 오랜 시간을 거쳐 증축과 보수 그리고 재건을 하면서 다양한 양식이 반영된 독특한 건축물이 되었다. 이 시기의 미술 양식은 오토 미술과 로마네스크 미술 사이의 과도기였기 때문에 '전기-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힐데스하임 성당>의 내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완전히 파괴되기 이전에 촬영_독일
● <힐데스하임 성당>의 재건축 설계도

● 현재의 <힐데스하임 성당>의 내부

1950~1957년 재건_독일
● 현재의 <힐데스하임 성당>

1950~1957년 재건_독일
<금속 세공>
<힐데스하임 성당>에는 베른바르트가 특별 주문한 청동 문이 설치되어있다. 문의 표면은 수평방향으로 공간이 분할되어 있는데 각 공간에는 성경의 내용을 고부조 방식으로 새겨놓았다. 문의 왼편에는 창세기를 오른편에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하였다. 이 청동 문의 부조의 전체적인 구성은 수사본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묘사된 인물은 실제 인물의 키보다 훨씬 작게 처리되어 있으며 꿈틀거리는 듯한 식물의 형태는 아일랜드의 세밀화를 연상시킨다. 원죄를 지은 아담과 이브의 모습 부조 아래에는 로마체 문장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져 있는데 베른바르트의 이름과 부조의 완성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각 공간의 장면들은 글자로 된 설명 없이도 성경의 이야기가 바로 연상될 정도로 실감 나게 묘사되어 있으며 이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역할도 하였다.
● 베른바르트 주교의 청동 문의 <하나님의 꾸중을 듣는 아담과 이브> 장면 부조

1007~1015년_109.2 x 58.4cm_힐데스하임 성당_독일
● 베른바르트 주교의 청동 문

1007~1015년_109.2 x 58.4cm_힐데스하임 성당(=성 미가엘 성당)_독일
<수사본>
● ≪오토 3세의 복음서≫ 중에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는 그리스도>
오토 시대에 제작된 수사본 회화에서 청동 문의 부조에서 보았던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오토 3세의 복음서≫에는 카롤링거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당시 수사본 장식과 삽화가 가장 많이 제작된 곳은 라이헤나우 수도원이었는데 이곳에서 만들어진 수사본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동시에 중세 미술 전체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오토 3세의 복음서≫이다.
그리스도가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는 장면의 회화는 비잔틴과 고대 시대의 회화의 느낌이 나면서 전체적인 색조는 폼페이에서 발굴된 풍경화의 환상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의 배경에 보이는 건물은 폼페이의 베티이 저택의 벽화에 적용된 애매한 원근법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의 새로운 시도는 건물을 배경으로만 두는 것이 아닌 신성한 하나님의 도시로 드러내고 있다. 건물의 공간은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며, 고대 미술에서 의사와 치료받는 환자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인물 구도로 그리스도와 성 베드로의 모습이 배치되어있다. 그리스도의 얼굴 묘사에 수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철학자의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또한 등장인물들의 왜곡된 신체 묘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은 육체적인 차원에 관심을 두고 그린 것이 아닌 정신적인 측면에 집중하여 제작했다고 볼 수 있다.

1000년경_23.9 x 33cm_뮌헨 국립 도서관_독일
*출처_서양미술사_H.W. 잰슨 & A.F. 잰슨,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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