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조각*
<초상 조각>
로마의 문헌 기록에 따르면 초기 공화정 시대 이후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조각하여 공공장소에 설치했다고 하는데 제국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관습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로마 역사의 초기 400년 동안에 해당하는 기원전 1세기 이전에 제작된 초상 조각에 대해서는 기록된 것이 없다.
로마인들은 집안의 가장이 죽게 되면 그의 얼굴을 밀랍 조각으로 만들어 가문의 제단 또는 공인된 성소에 보관하였는데 이 밀랍 조각은 장례식에서도 사용되었다. 이후 귀족 계급은 영구적으로 보관이 가능한 대리석 조각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대중 앞에서 자신들의 가문의 명예와 혈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선대의 조각상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선대 조상의 초상 조각>
● <조상의 흉상을 들고 있는 로마의 귀족> 조각상
초상 조각상이 주는 가치는 조각가의 뛰어난 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조각상에 표현된 얼굴이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에트루리아 조각이나 그리스의 조각과는 달리 현대의 증명사진에서 볼 수 있는 무덤덤한 표정과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얼굴의 세밀한 묘사에 초점을 두었으며 권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타내려 하였다. 다음 자료사진은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주인공이 그의 부친과 조부로 추정되는 흉상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다. 이 두 개의 흉상은 유실되었던 것을 다시 복제한 것이다. 원작의 양식을 볼 때에 오른쪽 작품이 왼쪽보다 30년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세기 후반_대리석_실물 크기_카피톨리노 박물관_이탈리아_로마
●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 of Primaporta) 황제> 조각상
기원전 27~기원후 14년의 기간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이다. 그의 통치기에는 초상 조각의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이 새로운 경향은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조각상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작품을 제작한 조각가는 신이자 동시에 인간을 묘사하려 하였다. 이집트와 근동 지역의 조각에서 볼 수 있었던 '신정 통치자'의 모습을 이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데, 그리스에서 기원전 4세기경부터 나타났던 이런 이미지가 로마 시대까지 이어져 로마제국시대의 황제들의 초상 조각에 덧입혀졌다.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조각상에서는 황제의 권위를 드높이려는 것과 동시에 신성한 분위기의 영웅적인 모습을 나타내려는 시도를 볼 수 있다.

기원전 20년경_대리석_높이 203cm_바티칸 박물관_이탈리아_로마
조각상의 가슴 부위의 은유적인 장식을 화려하게 묘사한 갑옷과 생생하게 느껴지는 의복 천의 재질이 세밀하게 조각되었다. 그러나 얼굴의 세부묘사는 생략하고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강인한 인상을 부각하였고 머리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을 통해 로마인들의 미적 취향을 알 수 있으며 예술적 품격을 느낄 수 있다.

기원전 20년경_대리석_높이 203cm_바티칸 박물관_이탈리아_로마
<기마 조각>
로마 조각의 양식은 다양하다 못해 복잡하다고 할 수 있는데, 공화정 시대의 전통을 드러내는 <조상의 흉상을 들고 있는 로마의 귀족> 조각상과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조각상이 로마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의 끝과 끝에 있다고 하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투스의 조각상에서 수염을 깎은 모습은 전통 양식을 따른 것이나, 이후의 제작된 황제들의 조각상에서는 그리스 유산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수염을 기른 모습이 묘사되었다. 이렇듯 이 시기의 로마의 조각에서는 형식주의와 고전주의적 형태를 함께 발견할 수 있다.
● <마르쿠스 이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기마상>
이런 경향은 그리스 철학에 심취해 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통치 시기에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그의 기마상은 현존하는 유일한 황제의 기마상이자 중세 암흑시대에 평민에게 공개되었던 극소수의 조각상 중의 하나라는 큰 의미를 가진다. 중세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에는 이 조각상의 말 오른쪽 다리 아래에 야만족의 우두머리가 포승줄에 묶여 웅크리고 있는 조각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광장에 세워진 황제의 조각상은 그를 세계의 지배자이자 승리의 통치자의 이미지로 보이게 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황제의 자신감 있으면서 당당한 힘을 느낄 수 있는데,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모습은 그를 전쟁 영웅이 아닌 평화의 수호자로 묘사하고자 한 의도로 보인다.

161~180년_청동_실물보다 큰 크기_캄피돌리오 광장_이탈리아_로마

161~180년_청동_실물보다 큰 크기_캄피돌리오 광장_이탈리아_로마
<두상 조각>
● <아라비아인 필리푸스(Philip the Arab) 황제>
3세기 경의 로마는 혼동의 시대였는데, 외부로는 야만족들의 위협이 있었고 내부로는 약해진 황실의 불안정한 권력으로 인해 황제가 자주 바뀌게 되었다. 변방의 용병 출신인 '군인 황제'들에 의해 통치되었던 시기도 있는데, 그중에서 4~5년 동안 황좌를 지킨 아라비아 출신의 필립푸스 황제의 조각이 남아 있다. 그의 초상 두상 조각은 실물과 가장 흡사하게 묘사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기록을 위한 조각이 아니었던 만큼 공화정 시대의 세밀하고 사실적인 조각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혼란스러움과 공포와 같은 어두운 감정과 심리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필립푸스의 눈은 어떤 대상을 응시하고 있는 듯하며 깊게 새겨진 눈동자와 밖으로 돌출한 안구를 묘사한 것은 새로 등장한 기법인데, 이로 인해 인물의 눈에 명확한 초점이 생겨서 응시하는 방향이 더욱 고정되어 보인다. 머리와 수염 묘사 역시 고전주의 양식과는 다르게 야성적으로 처리되었으며, 손질하지 않은 수염 묘사는 필리푸스가 겪는 고뇌를 현실감 있게 나타내었다. 이런 심리 묘사는 로마 제국 쇠잔기의 로마인들이 겪었던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반영해 주는 듯하다.

244~249년_대리석_실물 크기_바티칸 미술관_이탈리아_로마
● <콘스탄티누스 대제>
로마 쇠잔기의 조각상과 같은 모습은 로마 제국을 재건하여 최초의 기독교 황제가 되었던 콘스탄티누스의 초상 조각에서도 볼 수 있다. 원래는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에 있던 거대한 전신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얼어붙은 듯한 육중함과 발사하는 듯한 강렬한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당하게 한다. 이 초상 조각은 콘스탄트누스의 얼굴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권위와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초_대리석_높이 244cm_콘세르바토리 광장_이탈리아_로마
<부조>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초상 조각 이외에 개선문과 같은 거대한 건축물에 부조 기법으로 다양한 업적들을 기록하듯 새겼었다. 그리스 미술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이런 역사적인 내용의 주제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로마의 회화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공화정 시대의 후반기 무렵부터는 조각 양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황제들은 자신들의 업적이 더 견고한 방식으로 기념되어 남길 원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건축물에 새기기 시작하였다.
● 티투스의 아치(개선문) 복도에 부착된 <예루살렘 사원의 전리품> 부조
81년에 완공된 개선문인 <티투스의 아치>에 두 개의 패널 부조가 부착되어 있다. 티투스 황제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인데, 이 패널 중 하나에는 예루살렘의 정복을 축하하는 행렬이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행진하는 인물 군상의 행렬 가운데 부분을 다른 부분보다 깊이 새겨서 원근감을 강조하였다. 전리품으로 보이는 성전 촛대와 다른 보물들도 보인다. 이 부조 패널은 로마 부조의 발전 단계에서 절정에 이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티투스의 아치(개선문)>_복도에 부착된 부조 중 하나_81년_대리석_높이 239cm_이탈리아_로마
● <티투스의 아치(개선문)>의 정면 모습
현재 남아있는 로마의 개선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후대의 프랑스 개선문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티투스의 아치(개선문)>_81년_대리석_높이 239cm_이탈리아_로마
● <트라야누스의 원기둥>에 장식된 부조
당시에 만들어진 프리즈 중에서 가장 야심 찬 작품이라 볼 수 있는 것은 106~113년에 세워진 <트라야누스의 원기둥>을 장식 하고 있는 부조이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를 정복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둥에 부조로 전쟁기록을 했는데 시간 순서에 따라 기둥 위쪽을 향해가며 전쟁의 주요 장면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기둥의 면적을 장식하였다. 부조 전체의 모습이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기 위해 최대한 얕게 새겨졌으며 그로 인해 공간감은 떨어진다. 전투 장면보다는 정치적인 사건이나 군수 물자와 병법 등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106~113년_대리석_이탈리아_로마

106~113년_대리석_부조 띠의 높이 127cm_이탈리아_로마
*출처_서양미술사_H.W. 잰슨 & A.F. 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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