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 - 고대

그리스 조각(Ancient Greek Sculpture) - 고졸, 고전 양식

셀린늘 2022. 6. 2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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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 문명은 오랜 기간 동안 근동과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왔지만, 도기와 세공품이 많은 발전을 한 것에 비해 조각 분야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물론 당시 그리스인들은 근동과 이집트 지역에 직접 방문하여 그들의 건축과 조각 작품을 보았을 것이다. 심지어 당시 이집트에는 그리스인들이 세운 작은 규모의 식민지도 있었다고 한다. 회화분야에 비교하면 조금 늦었지만 결국 그리스인들은 건축 분야에서도 그들만의 양식을 확립해 나갔다. 

 

 

*고졸 양식(=아르카익, Archaic)* 

 

고졸기 그리스는 기원전 8세기 중반부터 기원전 480년까지의 그리스 암흑시대 다음이자 고전기 그리스 전에 해당하는 시기를 말한다. 

 

 

 <조각상> 

 

● 쿠로스(Kouros, 청년)의 대리석상 

 

'쿠로스' 석상은 기원전 600년경에 만들어진 초기 그리스 미술의 조각상이다. 굳어있는 자세와 표정, 넓고 강조된 어깨와 주먹 쥔 손과 같은 자세는 이집트의 '미세리누스 왕'의 조각상과 많이 닮아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왼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는 것과 가발처럼 보이는 머리 스타일마저 흡사하다. 이집트 미술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리스 고졸 시대의 조각상은 실제 사람의 모습과 다른 단순한 형태와 경직된 모습이 아직은 원시적인 단계로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의 조각상은 이집트의 것과 비교해 볼 때에 독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의 조각상은 완전한 입상이며 이것은 조각의 역사에서 최초로 나타난 것이다. 이집트의 조각들은 부조와 같은 형태이거나 조각상을 지탱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받침돌이 붙어있다. 그러나 그리스의 조각상은 비록 그 형태가 단순해 보일 지라도 어느 것에도 기대고 있지 아니하며 완전히 입체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예술적인 의도와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조각에서는 조각상 자체가 생명과 영혼을 부여받았으나 이집트의 조각상은 신성 또는 죽음과 연관한 주술적인 요소와 연결된 긴장감이 느껴진다. 

 

<쿠로스(청년)의 대리석상>_Metropolitan Museum of Art

기원전 600년경_대리석_높이 188cm_플레처 기금(1932년)_메트로폴리탄 미술관_뉴욕 

 

 

● 도리스식 옷을 입고 있는 코레(Kore, 소녀)의 대리석상

 

그리스 여성 조각인 '코레' 석상은 옷을 입고 있으며, 인체와 옷이 만나는 지점에 생기는 주름과 조각의 관계를 새롭게 보여준다. 쿠로스 석상이 만들어지고 대략 100년 뒤에 만들어진 코레 석상은 여전히 딱딱한 자세이지만, 머리카락과 얼굴 표정이 훨씬 자연스럽다. 이 석상의 즐거워 보이는 둥근 얼굴의 미소를 '아르카익 스마일(archaic smile)' 또는 '고졸 미소'라 부른다. 

 

<도리스식 옷을 입고 있는 코레의 대리석상>_Wikipedia

기원전 530년경_대리석_높이 121.9cm_아크로폴리스 박물관_아테네 

 

이 남녀 조각상들은 이와 같은 형태로 많이 발견되었는데, 때로는 조각상을 만든 이의 이름이나 신에게 바치는 헌정문이 새겨져 있기도 한다. 이 조각상들이 누구를 묘사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신에게 헌납된 용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건축 조각> (=architectural sculpture) 

 

이집트인들은 고왕국 시대 이후 건물의 벽을 부조로 새겼는데, 그들이 새긴 부조는 매우 얇아서 무겁지도 부피가 크지도 않았다. 마치 벽화와도 흡사한 것이라 구분이 모호하다. 이와 같은 특징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그리고 페르시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근동 지역으로 갈수록 이 특징은 변화했는데, 돌덩이를 고부조 기법으로 조각하여 장식한 미케네의 '사자의 문'과 같은 형식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런 형식에서 더 나아가 독립된 형태의 부조 양식이 생겨났다. 

 

 

● <신들과 거인들의 전쟁(싸움)> 부조

 

그리스인들은 미케네의 부조 기법을 애용했는데, 그들이 만든 조각은 신전 상부 부분의 삼각형 공간인 '박공'과 그 바로 아래 부분인 '프리즈'에 주로 장식하였다. 그리스인들의 조각은 영웅들과 신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아주 다양한 장면들을 부조로 기록해 놓았다. <신들과 거인들의 전쟁(싸움)>은 고부조 기법으로 조각하여 일반 부조보다 한층 더 입체적으로 보이는 작품이다. 

 

<신들과 거인들의 전쟁(싸움)> 부조 확대_Alaturka.Info

시프니안 보고의 북쪽 프리즈의 장식 부조_기원전 530년경_대리석_높이 66cm_델포이 고고학 박물관_그리스 

 

이 작품의 조각가는 프리즈 밑에 돌출 난간을 설치하여 부조 작품에 훨씬 깊이 있는 공간감을 부여하였으며, 여러층으로 배치한 인물들 또한 그 거리감이 느껴지도록 묘사의 깊이를 다르게 하였다. 이전 시대의 작품과 이 부조 작품을 비교해 본다면 고졸 시대의 조각이 새로운 차원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신들과 거인들의 전쟁(싸움)> 부조_Alfred Molon

시프니안 보고의 북쪽 프리즈의 장식 부조_기원전 530년경_대리석_높이 66cm_델포이 고고학 박물관_그리스 

 

 

● <죽어가는 전사> 박공 조각

 

그리스인들은 신전 건축물의 상부에 있는 삼각형 공간인 박공에 복잡하고 역동적인 배치 방법으로 조각상들을 장식하였다. 그중에서 주목할 작품으로는 기원전 490년에 에기나에 새워진 아파아이아(Aphaia) 신전의 동쪽 박공의 조각상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고졸 시대 조각의 마지막 발전 단계에 속한다. 그중에서 박공 왼쪽 구석에 배치된 이 <죽어가는 전사> 조각상은 인상적인 작품이다. 근육질의 전사가 방패에 몸을 의지하여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은 찰나의 순간에 멈춰있는 인간의 신체를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이 전사는 본인에게 주어진 고통을 담담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또한 조각가도 그가 처한 고통을 위엄과 절제로 승화시켰다.  

 

<죽어가는 전사> 박공 조각_Tradicao Europa - Tumblr

아파이아 신전의 동쪽 박공(에기나)_기원전 490년경_대리석_길이 182.9cm_뮌헨 국립 고고학 박물관_독일

 

<죽어가는 전사> 박공 조각 확대_twitter.com/tzoumio

아파이아 신전의 동쪽 박공(에기나)_기원전 490년경_대리석_길이 182.9cm_뮌헨 국립 고고학 박물관_독일

 

 

*고전 양식(=Classical)* 

 

고졸 시대 후기의 조각가들은 몸부림치거나 뛰어가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 가득한 전쟁의 한 장면을 수준 높은 묘사의 부조 양식으로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런 작품을 만들 정도로 뛰어난 조각가들도 입체적인 형태의 서있는 조각상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초창기의 서있는 조각상은 마치 군인들이 차렷 자세로 서있는 것처럼 딱딱한 분위기를 풍긴다. 

 

 <조각상> 

 

● <크리티오스 소년> 조각상

 

이 조각상은 최초의 온전히 서 있는 조각상이라고 추측된다. 조각가의 이름을 딴 <크리티오스 소년> 조각상은 의도적으로 한쪽 다리로 체중을 지탱하는 자세로 표현되어 몸 전체의 곡선이 드러나게 하였다. 또한 인간의 실물 모습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비로소 조각에서 인체의 형태가 조화로운 비례를 갖추게 되면서 그리스 미술 양식이 추구하고 있었던 '완전성'의 이상적인 기법들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크리티오스 소년> 조각상은 마치 다음 순간 움직일 것 같은 생생한 인상을 준다. 표정의 변화 없이도 생동감을 줄 수 있게 되어서인지 이후의 조각상들은 이 조각상처럼 진지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크리티오스 소년> 조각상_wikipedia.org

기원전 480년경_대리석_높이 86.4cm_아크로폴리스(아테네) 박물관_그리스 

 

 

● <포세이돈 또는 제우스> 조각상 

 

인체의 조화로운 비례를 나타내고 균형 있는 모습의 작품들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움직이는 자세의 서 있는 조각상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대응 균형'의 개념으로 제작된 인물 조각상은 '엄격 양식(severe style)'이라 불리며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졌다. 그중에서도 <포세이돈 또는 제우스> 조각상은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높이가 208cm에 이르는 청동 조각상은 무언가를 막 던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순간의 포착된 장면과도 같은 자세는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며 당당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신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삼지창이나 천둥 같은 것을 던지려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자세와 몸짓은 인간에게는 평범한 것이지만 그 주체가 신이라면 이것은 신성한 힘을 드러내기 직전의 모습으로서 상징성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포세이돈 또는 제우스> 조각상_Parikiaki

기원전 460~450년경_청동_높이 208cm_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_그리스 

 

 

<건축 조각> (=architectural sculpture) 

 

● <죽어 가는 니오비드> 조각상 

 

움직이는 자세의 서있는 조각상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신전의 박공에 장식하던 조각상의 자세도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죽어 가는 니오비드> 조각상은 도리스 신전의 박공 공간을 장식하던 조각상이다. 이 작품이 단지 장식의 역할을 하기 위해 조각된 것이라기에는 뛰어난 입체감과 인체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큰 놀라움을 준다. 

 

니오베는 일곱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을 가진 어머니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 니오베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에게 자식 자랑을 하자 그것을 질투한 두 신이 그녀의 자식들을 전부 죽여버리고 만다. 니오베의 딸들 중에 한 명인 니오비드가 신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결국 등에 화살을 맞게 되는데, 이 작품은 니오비드가 땅에 꿇어앉아 화살을 뽑아내려 애쓰며 몸부림치는 순간을 조각한 것이다. 

 

이 조각상은 그리스의 대형 여성 나체상 중에서 처음 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전까지는 주로 남성의 나체상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격렬한 동작이 여성의 육체를 표현하는 데에도 시도된 것이다. 이는 선정적이거나 단지 여성의 육체를 묘사하려는 기술적인 목적이 아니라, 조각을 통해서 한 인간이 처한 운명과 고통의 감정을 우아한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조각가의 의도였다. 이런 비애감을 나타내는 조각은 고전 시대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죽어 가는 니오비드> 조각상_Flickr

기원전 450~440년경_대리석_높이 149.9cm_테르메 박물관_로마

 

<죽어 가는 니오비드> 조각상_twitter.com/ancienteurope

기원전 450~440년경_대리석_높이 149.9cm_테르메 박물관_로마 

 

 

● <세 여신> 조각상 

 

고전 시대에 제작된 작품들 중에서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들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파손된 상태이다. <세 여신> 조각상은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박공을 장식했던 것으로, 제우스의 머리에서 아테나 여신이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다른 신들을 조각한 작품이다. 이 인물들의 특징은 격렬한 행위를 하는 중이거나 비애감의 감정을 나타내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인물들은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기대어 있으며 나른한 인상까지 준다. 여신들의 부드럽고 풍만한 몸을 감싼 천들은 마치 흘러내리는 듯하며 주름들은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세 여신> 조각상_Artsy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박공_기원전 438~432년경_대리석_실물보다 큰 크기_대영 박물관_런던 

 

이 작품 또한 <죽어 가는 니오비드>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신전 건물 상부에 해당하는 박공에 장식되기에는 과할 정도로 뛰어나며 생동감이 있다. 아마도 그 시대의 그리스인들도 이러한 점에 동의했던 것 같다. 이 이후 시기에 만들어진 장식용 조각상들은 사람이 감상하기에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었다. 

 

 

 

 

 

*출처_서양미술사_H.W. 잰슨 & A.F. 잰슨,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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